제239회 신아독서회는 이형두사장님께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발표해 주셨습니다.
“아일랜드의 모자 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고통받았던......” 이 부분을 그냥 넘겼는데,
책을 다 읽고나서야, 이제야 이해가 좀 됩니다.
캄캄할 때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출근해 날마다 하루 종일 배달하고
캄캄할 때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44쪽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고 그러면서 조금씩 달라지겠지요.
차곡차곡 모아서 켜켜이 쌓아온 인생의 연륜에서
어떤 이는 더 악의적인 사람이 되고
어떤 이는 더 선한 사람이 되고.
분명 펄롱은 더 선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그렇게 새로워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달라지지 않고 바뀌지않는 삶은 없습니다.
“어쨌든 간에,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 딸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잖아?”
“우리한테 무슨 책임이 있어?”
“이런 생각 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55쪽
아내 아일린의 이 현실적인 모습 앞에 누가 뭐라 할 사람있을까?
"나치는 처음에 공산주의자를 숙청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에 침묵했다.
그 다음에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기에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기에 침묵했다.
그 다음엔 카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기에 침묵했다.
마지막에 그들이 내게로 다가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독일 '마르틴 니묄러'의 유명한, 한번 정도 봤던 시입니다.
나와 가정, 일하는 회사, 우리나라만이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가면 잘 사는 것일까 질문해봅니다.
그래도 우선 내가 건강하고 내 가정이 화목하고 일터가 잘 굴러가야지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펄롱은 늘 그러듯 그냥 꾸역꾸역 할 일을 했다. 70쪽
이런 생각,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종종 하는데,
펄롱의 상황과 전혀 유사하지 않더라도.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119쪽
저는 이부분이.
“날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요람 속 아기를 들여다보곤”(93쪽)한 미시즈 월슨의 헌신적인 사랑을 펄롱은 기억했고, 이제 엄마와 이름이 같은 맨발의 어린 세라를 입양하면서 “고생길이 느껴”지고 “마주하게 될 고통”이 있겠지만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은 (마지막 쪽) 펄롱. 한 생명을 온전하게 키워 낸 미시즈 윌슨, 그리고 또 한 생명을 고귀하게 살려 낼 것같은 펄롱.
이형두사장님, 발표 감사드립니다.
항상 좋은 책으로 우리의 “독서 근력”을 키워주셔서 더 감사합니다.